전세 계약 갱신을 실거주 이유로 거절당한 세입자가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실거주를 내세워 갱신을 거절한 집주인이 이후 제3자에게 재임대하려면 두 가지 요건을 임대인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기준을 처음으로 명시했다.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임차인 A씨는 2020년 9월부터 2년간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를 보증금 6억6000만 원에 임차했다. 계약 종료를 앞두고 갱신을 요구했으나 임대인 B씨는 실거주를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그런데 B씨는 2024년 4월 새 임차인과 보증금 8억2000만 원에 계약을 체결했고, A씨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한 집주인이, 갱신됐더라면 계약이 유지됐을 기간 동안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임대하면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한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정당한 사유’의 요건과 그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있다.
B씨는 자신이 보유한 다가구주택 6개 호실 임차인들이 한꺼번에 보증금 반환을 요구해 재임대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보증금 반환 채무가 갱신 거절 당시 이미 존재했던 사정이므로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에 해당하지 않고, 재임대가 반드시 불가피했다고 볼 수도 없다며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이 처음 제시한 두 가지 요건
대법원 2부는 이번 판결에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기 위한 요건 두 가지를 처음으로 명시했다. 첫째, 갱신 거절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이 이후 발생해야 한다. 둘째, 그 사정으로 인해 제3자에게 임대하는 것이 불가피해야 한다. 아울러 이 두 요건을 충족한다는 입증 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이 기준이 의미하는 바는 실질적이다. 갱신 거절 시점에 이미 존재했던 재정적 채무는 이후 재임대의 정당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한 뒤 제3자에게 임대할 경우, 그 불가피성을 집주인 측이 구체적으로 소명해야 한다는 점이 이번 판결로 명확해졌다.
대법원 2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지난달 확정했다.
김희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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