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누가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여보, 밥.”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손가락으로 부엌을 가리켰다. “밥솥.” 짧고 정확한 안내였다.

잠시 뒤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반찬은?” “냉장고.” 이번에도 정확했다. 어젯밤에 만들어 넣어둔 반찬이 세 통이나 있었다. 밥솥은 보온 중이고 냉장고는 정상 작동 중이었다. 우리 집에서 꺼져 있는 건 나 하나였다.

그런데 남편은 부엌으로 가지 않고 침대 옆에 계속 서 있었다. 나는 한쪽 눈을 떴다. “뭐가 더 필요한데?” 남편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아니, 차려 먹어야 되잖아.”

드디어 문제의 정체가 밝혀졌다. 이 사람에게 부족한 건 밥도 반찬도 아니었다. 음식과 식탁 사이를 왕복해 줄 사람이었다. 밥솥과 냉장고 사이에 내가 기본 옵션으로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남편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내가 꺼낸 건 반찬이 아니라 숟가락 하나였다. 나는 그것을 남편 손에 쥐여줬다. “오늘부터 이게 네 리모컨이야.”

밥솥도 냉장고도 있는데, 남편은 나부터 켰다 장면 2

“갑자기 왜 그래?” “갑자기 아니야. 밥솥 설명서에도 아내를 깨우라는 항목은 없더라.” 남편은 숟가락을 내려다봤다. 나는 냉장고 손잡이를 가리켰다. “저 문은 음성인식 안 돼. 손으로 열어야 해.”

남편이 냉장고를 열었다. 반찬 통은 생각보다 쉽게 발견됐다. 문을 열자마자 앞줄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며 밥솥 위치를 한 번 더 안내해 줬다. 고객 서비스는 여기까지였다.

얼마 뒤 조용히 식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밥그릇도 찾았고 반찬 뚜껑도 열었고, 심지어 물까지 따라 마시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불을 끌어당겼다. 집에 새 가전은 안 들였는데 자동화가 하나 늘었다.

남편이 나가기 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 먹으니까 좀 허전하네.” 나는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나는 아주 푹신해.” 그날 아침 우리 집은 밥솥도, 냉장고도, 나도 제 기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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